[16] 노병의 독백 - 국민방위군-18부대 노병의 독백 - 국민방위군 (18부대) 10시가 되자 현역 군인은 아니지만 군인과 같은 복장을 한 민족 청년단 단원이 응소자들을 모이게 하더니, 호명을 하면서 중대 편성을 한다. 편성이 끝나자 청년단 단원이 말하기를, “정상적인 계획에 따른다면 여러분은 신체검사를 거쳐 합격자만을 기차에 태워 대구 제5보충대로 입영을 해야 하나, 중공군의 진격이 빨라 여러분은 목적지까지 도보로 걸어가서 입영 절차를 밟게 됩니다. 여러분은 남하하는 동안에도 소집 영장을 받은 군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저희들 청년단원의 지시에 순응하고, 저희들이 목적지까지 인솔할 것입니다”라고 하더니 대오를 정리하여 앞뒤에 서서 부대를 인솔한다. 13일 학교에 들린 이 선생은 다음날 종로 2가 탑..
[17] 노병의 독백 - 국민방위군-어린박사 노병의 독백 - 어린 박사 교실에 수용된 장정은 오전엔 교실 바닥에 둥글게 모여앉아 방위군 장교가 들려주는 시사 해설이나 오락회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연병장(운동장)에 나가 제식훈련을 한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오락회 때면, 한참 유행하던 현인의 ‘신라의 달밤’을 “아. 아...,아”하고 흉내를 내고, ‘고향무정’을 멋지게 부르던 용희준(龍熙俊)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경북 문경에서 있었던 일이다. 혼잡한 국도를 피해 험악한 새재(鳥嶺) 산길을 넘어 산 밑 초가집에 도착했는데, 집안의 공간은 먼저 온 피난민이 모두 차지하고, 공간이 없어 추녀 밑에 쪼그리고 앉아 겨울밤을 새운 상호는, 새벽 동이 트자마자 걷는 것이 추위를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되어,..
[18] 노병의 독백 - 국민방위군-맡겨둔 생명 노병의 독백 - 맡겨둔 생명 1951년 3월18일 아침이다. 교실에 앉아 연희대학교에 다녔다는 중대장(防衛少尉 林春在)의 민주주의를 옹호하자는 제목으로 강의를 듣고 있는데, 민주주의를 옹호해야 한다며 흑판을 향하더니, 중대장은 글씨를 쓰려다 뒤돌아서며 “옹호하자는 옹(擁) 자를 모르는데, 누구 아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드시오” 라고 하는데 누구 하나 손드는 사람이 없다. 상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손을 드니, 중대장은 상호 보고 나와서 흑판에다 옹자를 쓰라고 한다. 단상으로 올라가 흑판에다 옹(擁)자를 쓰니, 앉아있던 대원들이 환호를 하며 박수를 친다. 상호는 의기가 양양해서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밖을 내다보니, 일제 토요타 군용 트럭이 현관에 와서 멈춘다..
[19] 노병의 독백 - 국민방위군-귀향장정 노병의 독백 - 귀향장정 1951년 5월 13일 아침이다. 교육 훈련이 없다고 해서 연병장(운 동장)에 나가 서성거리는 데, 하얀 사람의 물결이 위병소 앞에서 진주 쪽으로 흘러간다. 철조망 가로 달려가서 걸어가는 사람의 물결을 바라보니, 하얀 색이 까맣게 찌들어 뿌옇게 부풀은 한복을 입은 젊 은이의 무리가 이불 보따리를 지고,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힘없이 걸어간다. 철조망을 잡고 걸어가는 젊은이에게, “무엇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으니, 자기들은 “통영 초등학교에 주둔 중인 국민방위군 병력으 로, 국민방위군이 해산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라고 대답 한다. 오후 1시가 되자 주번사령이 나와 병력을 집합시킨다. 사열대 위엔 현역 육군중위가 서 있는데, 신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