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노병의 독백 - 첫사랑 나무를 지고 동네가 보이는 등성이를 넘자니 숨이 차며 나뭇짐이 어깨를 누른다. 눈앞에 산등성이가 다가오니 마음만이 앞으로 나갈 뿐 발은 제자리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먼저 올라간 관호(金寬鎬)가 산등성이 묘지 앞 양지바른 곳에 “쾅”하고 지게를 받쳐놓고 “후유우”하고 긴 한숨을 내쉬며 무명 적삼을 훨훨 벗는 다. 고갯길이 험하다 해도 보릿고개보다는 넘기가 수월하다. 여름에 논에 나가 김을 매며 해가 길고 지루해서, 허리를 펴며 서산에 지는 해를 눈으로 끌어 내리던 여름 해보다는 겨울 해는 너무도 짧다. 아침 상머리에서 콩 섞인 보리밥 한 사발을 게눈감추듯 먹어치우고, 이웃집 관호하고 30리 떨어진 가야산까지 먼산나무를 가서, 마른 솔가지를 주워 지게에 지고 일어섰을 때는 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