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군사혁명 노병의 독백 - 군사혁명 휴전이 되고 소위가 소모되지 않으니 위관장교는 포화상태다. 사고가 있는 장교는 가차 없이 자르는 데, 사고가 없으니 군대에 남겨둔다. 진급에 뒤진 장교는 사회에 나가서 밥 먹을 궁리를 하고, 상호는 5년간을 작업모에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으니, 누렇게 변색되어 누가 봐도 고참 중위라고 인정을 한다. 육군본부 고급부관실(현 인사운영감실)에서는 ‘메모처리 장교’ 라는 직책을 신설하여 위관장교를 보임하고, 고위직 공무원이나 장군들의 메모를 가지고 와서, 전속을 부탁하는 사람의 처리 결과를 부탁받은 사람에게 알려주는 장교가 별도로 있다. 1961년 5월 16일, 군수기지 사령관으로 있던 ‘박정희’ 소장이 ‘쿠테타’를 일으키고, 높은 사람의 메모..
[31]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중대장과 고문관 노병의 독백 - 중대장과 고문관 최고 학부를 나왔으니 외형적인 공부는 끝났으나, 영어실력이 짧다고 생각되어 1963년 4월 1일부터 시작하는 외국 주재 무관 양성을 위한 전략정보 영어반 시험에 합격하여 10개월간 영어를 배우기 위해 충남 논산에서 경북 영천에 있는 육군 정보학교로 떠난다. 10개월간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배우니, 영어에 대한 눈이 트인다. 영어반을 졸업하고 부대 배치를 받는데, 졸업 성적에 따라 배치를 받으니, 전투서열이 빠른 맹호사단이 차례 온다. 보병 제1연대(聯隊長 金宙明 大領) 신병중대인 제11중대장 보직 을 받고, 150여 명의 신병 교육훈련과 복지를 책임진다. 야전 지휘관이 군인의 꽃이라면 연대장이나 대대장보다 중대장을 꼽는다...
[32]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1식3찬과 돼지고기 노병의 독백 - 1식3찬과 돼지고기 전쟁을 하는 데는 군인을 잘 먹이고 잘 입히며, 소모되는 병참 물자를 끊임없이 보급하는 것이 전투에 승리하는 원동력이오, 중요한 요소다. 군 당국에선 병참 물자의 하역 지점과 저장 위치를 신중히 고려하는 까닭도, 필요할 때 적기에 공급하기 위한 사전 포석 이다. 병참물자를 실은 수송선이 부산항에 도착하면, 임시로 저장 관리 하는 부대가 있고, 전투지역 가까운 곳에 장기적으로 저장하는 시설 과 관리하는 부대가 따로 있다. 홍천읍내 동쪽으로 4km 떨어진 고개 넘어 금촌리 산기슭에 흙 벽 돌로 된 포탄의 저장고가 산재해 있다. 1966년부터 8월까지 6개월간을 상호 주대가 탄약고 경비를 책임 진다. 행정은 부대에서 하고..
[33] 노병의 독백 - 현역군인-일본 오키나와 유학 노병의 독백 - 오키나와 유학 2년 동안 중대장 직을 무사히 수행하고 있는 데, 1965년도 도미 선발시험에 합격하니, 군 당국은 합격자의 영어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영천 육군 부관학교 군사 영어반 과정으로 입교 명령을 낸다. 중대장이 부대를 떠날 때는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음 중대장 에게 인계하기 위해서, 보급품을 연병장에 진열하고 숫자를 헤아려 보급품의 이상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휴전이 되고 10여 년이 흘렀어도 전투 당시의 망실품이 그대로 장부에 남아있어, 중대에 따라 사병의 복장이 다르고, 중대 망실품은 상급 부대 지휘관도 인정하고 있어, 부대장 인계인수 때마다 말썽이 된다. 암묵리에 망실숫자를 인정하고 있으니, 부대 인계인수는 약간 의 ..
[34] 노병의 독백 - 월남전쟁-유격훈련 노병의 독백 - 월남전쟁 유격훈련 1954년 4월 5일이다. 월남으로 떠나기 전에 1개월간 유격훈련을 받기 위해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에 있는 유격 훈련소로 입소를 한다. 밀림 지대에서 ‘베트콩’과 싸우려면 비슷한 환경과 여건에서 산악지 훈련을 받은 후 월남전에 참전하라는 육군본부 명령이다. 밧줄을 잡고 경사진 나무판을 오르내리고, 계곡을 가로질러 밧줄 3줄로 가설된 구름다리에 올라, 좁혀진 밧줄을 넓혀가며 계곡을 건너가는 산악지훈련, 밧줄을 사용해서 절벽을 오르내리는 ‘레펠 훈련, 산과 저수지를 가로지른 밧줄에 ’도로래‘를 달고 ’도로래‘에 의지해서 저수지를 건너는 도하훈련과, 야간에 지도에 의지해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야간 독도법 훈련으로 파월 자병은 월..
[35] 노병의 독백 - 월남전쟁-잘있어라 부산항 아 노병의 독백 - 잘 있어라 부산항 아 오후 2시가 되어 수송함 갑판과 부두에 가설된 임시 무대를 중심으로 떠나는 장병과 보내는 가족, 단상에 앉은 각계각층 기관장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 보며 환송 행사가 시작된다. 임시 무대 마이크 앞에 선 기관장이 바다 건너 수송함 갑판 위에 도열한 장병을 향해, 월남에 가서 용감히 싸워 국위를 선양하고 몸 성히 개선하여 부산에서 다시 만나자는 요지의 환송사(歡送辭)를 한다. 행사가 끝나자 수송함은 고동을 울리며 서서히 뱃머리를 돌린다. 부두와 갑판을 하나로 이어주던 5색 테이프가 끊기며 환송객이 흔드는 태극기 물결이 힘차게 파도친다. 상호에겐 “빠앙...,” 하고 울리는 수송함 고동소리가 슬프게 들린다...
[36] 노병의 독백 - 월남전쟁-주인과 나그네 입장 노병의 독백 - 주인과 나그네 입장 아침에 수송함은 ‘나트랑’ 항에 입항했으나, 내항엔 들어가지 못하고 외항에 닻을 내린다. 내항은 전쟁을 하느라 바다 밑의 모래를 준설(浚渫)하지 못해서, 바다 깊이가 얕아져 1만 톤급 이상은 내 항 에 들어가지 못하고 외항에 닻을 내린다고 하는데, 상호가 탄 수송함 ‘바레트’ 호는 1만 3천 톤급이다. 아침에 작업을 하기 위해 월남 사람이 배에 오르는 데, 미군 헌병 이 월남 사람의 몸수색을 한다. 상호가 생각하기엔 ‘나트랑’은 월남 땅이오, 항구는 월남 항구인 데, 미군 헌병이 월남 땅에서 월남 사람 의 몸수색을 하는 것은, 주인과 나그네 입장이 뒤바뀐 처사라고 생각 했으나, 지나가는 마군 장교로부터 지난 5제대 ..
[37] 노병의 독백 - 월남전쟁-수도 사이공 노병의 독백 - 수도 사이공 오후 3시, 상호가 ‘나트랑’ 공항에서 사이공 ‘단산누트’ 국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줄서 있는 데, 월남 사람들 틈에 상호 일행 15명과 함께 간간이 미군 사병도 눈에 띈다. 미군 TMO(역내 파견 수송대) 하사관이 미군 상사를 데리고 와서 줄서있는 상호 앞에 세운다. 상호는 약소민족의 비애를 씹으며, “너는 군대 예절을 아느냐-Do you know the millitary courtesy"라고 일갈하니,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간다. 오후 5시에 상호가 ‘탄산누트’ 국제공항에 내리니, ‘사이공’은 한 나라의 수도답게 넓고 큰 도시지만 교통을 정리하는 순경이 안 보이고 질서는 엉망이다. 거리엔 자동차보다 오토..
[38] 노병의 독백 - 월남전쟁-진중근무 노병의 독백 - 진중근무 아침에 상호가 사령부로 출근하니 인사참모부 교류장교가, “전쟁터에 왔으니 보직을 받기 전에 전방에 나가서 진중 근무를 하시오”라고 한다. 일행 15명을 중부 ‘나트랑 지역의 백마부대, 퀴논지대의 맹호부대로 배치하는 데, 상호는 일행 5명과 같이 ’나트랑‘ 지역의 백마부대로 배치 받는다. 상호로선 ’베트콩‘과 싸운다는 것은 각오한 일이지만 싸움터로 가게 되니, “병은 사야 (兵死也)라는 글귀가 떠오르며, 전사라는 단어가 눈앞에서 얼른거 리고, 짧은 기간의 전투 경험이라는 것을 굳이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오전 11시에 상호 일행이 ‘탄손누트’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후 4시에 ‘나트랑’ 비행장에 내려 ‘백마부대’로 가려 했으나, 차..
[39] 노병의 독백 - 월남전쟁-주월한국군사령부 노병의 독백 - 주월 한국군사령부 상호가 명령에 따라 정보참모부를 찾아가니, 사무실에 있던 장병들이 환영한다는 인사를 한다. 참모(尹晟重 大領)에게 신고 하 니, 신고를 받은 참모는 “타 참모부에서 김 소령을 전입 요청했지만 내가 요청해서 우리 참모부로 왔으니, 한 달 도안 상황실 근무를 하면서 월남전 양상을 파악한 후에 정보 업무를 맡으시오”라고 한다. 사호에겐 처음 근무하는 상황실이다. 업무내용은 육군 정보학교 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정보실습 그대로다. 밤 12시에 맹호부대 와 백마부대, 그리고 청룡부대의 전투 결과를 종합하여, 새벽 2시에 서울 합참(合同參謀本部)에 보고하고, 월남에서 일어나는 긴급 사항 을 조치하는 것이 상황실에 부여된 임무다. ..